글자사전

서문 : 단어에도 생로병사가 있습니다. 영도에 도착하였을때 기획자의 눈에 들어온 것들은 지금은 세상에서 사라지고 있지만, 영도에서는 생명력을 가지고 살아있던 단어들이었죠. 제가 생각한 기획자가 가져야하는 태도는 입 밖에 꺼낸 단어의 중요함을 인지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단어들이 가지고 있는 힘은 기획에 대한 인상을 결정짓기도 합니다. 이번 영도 연결기획자 사업을 통해, 저는 작은 지역 사회에서 행했던 것들에 대한 추적을 단어로 알아보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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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회 (商會) 몇 사람이 함께 장사를 하는 상업상의 조합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주로 ‘쌀’이라는 것이 붙여져 ‘쌀상회’라는 단어가 더 눈에 익죠. 영도에는 약 20개의 쌀상회가 있습니다. 이 곳에서는 우리가 주식으로 먹는 쌀 뿐만 아니라 고추가루를 파는 ‘쌀고추상회’도 있으며, 시대가 변함에 따라 가공식품도 함께 파는 곳도 있습니다. 소비자의 입맛에 맞춰 쌀과 여러 농작물을 취급해 판매하는 작물이 상회마다 달라 그 지역동네의 밥상을 책임지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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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보호수, 당수나무 : 길가에 있는 나무들을 베지 않고 둘러쌓아 벤치를 만든 모양새입니다. 예로부터 마을에 있는 나무들은 혼을 가지고 있어, 함부로 베면 안된다는 신앙이 있습니다. 특히 바다를 끼고 있는 마을에는 만선과 풍요, 평안을 위해 당수나무를 기점으로 제를 지내는 전통 또한 가지고 있죠. 자연과의 공존은 이렇게 보여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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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복장, 양복점, 라사 : 1970년대 이전 양복점을 ‘ㅁㅁ 라사’라고 불렀다고 합니다. 수제 양복점인 셈인데요. 포르투칼에서 오버핏의 코트를 양복을 입은 것 처럼 보이게 하는 양털로 짠 두툼한 방모직을 라사 (Raxa) 라고 했던 것에서 기원이 되었습니다. 옷을 맞춰서 입었던 그 당시 양복점은 굉장히 흔한 가게였지만 공장형 기성품이 출시되면서 자취를 감추고 있습니다. 대학 입학, 취직, 결혼등 인생에서 큰 사건에 빠지지 않았던 맞춤 양복은 그때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단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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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꼬미 : 쌀, 부식품,상비약, 기름따위의 배에서 필요한 것 일체를 이르는 말입니다. 주로 ‘배에 시꼬미는 다 채웠소?’라며 배에 타기 전 마지막으로 확인을 하죠. 영도에는 남해상회라는 (여기서도 상회라는 말이 나오네요) 선원들을 위한 시꼬미를 파는 곳이 있습니다. 가게에 들어가보면 큰 식료품 박스가 키를 훌쩍넘어 쌓여있죠. 선원들이 바다를 항해하기 전 들리는 이 곳은 바다를 향해 가는 선원들의 감정들이 교차하는 곳입니다.

닫는 글 : 많은 단어들을 수집하고 싶었습니다. 단어로 형용할 수 없는 풍경들도 있더군요. 영도는 그런 곳인것 같습니다. 계속해서 존재하고 있어서 모르겠지만, 외지인이 보기에는 시간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곳이었습니다. 기획자의 유토피아가 생긴다면 영도에서 저는 이런 기억과 정서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단어들을 가져가고 싶습니다.